어느새 친근한 말투만 보이는 모바일 화면들
모바일 앱에서 다른 사람에게 돈을 송금하면 화면 한가운데에 귀여운 애니메이션이 나타나고, 그 아래에는 “송금했어요!”라는 문구가 뜹니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특별히 눈길이 가지 않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같은 상황을 실제 은행 창구로 옮겨 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은행 직원이 송금 처리를 마친 뒤 환하게 웃으며 “송금했어요!”라고 말하는 상황, 뭔가 어색한 장면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송금되었습니다”라는 안내가 더 익숙하고 심지어 실제 고객 응대에서는 “송금되셨습니다”처럼 상대를 과하게 높이려다 송금이라는 행위에까지 높임을 붙이는, 문법적으로는 틀린 표현을 종종 듣기도 합니다. (사실 일상에서는 “송금되셨습니다”라는 표현이 훨씬 더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는 문법적으로 명백히 틀린 표현입니다. 송금이라는 행위나 이 행위의 주체가 되는 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듣는 상대방, ‘사람’을 높이는 것이 높임법이 옳은 사용입니다.)
은행 창구에서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말투가 모바일 앱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제법 흥미롭습니다. 사람과 직접 대면하는 상황과 화면에 표시되는 문장을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겠지만, 돈을 보내는 행위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모바일 앱에서는 여기에 귀여운 캐릭터와 경쾌한 애니메이션까지 더해집니다. 송금이라는 금융 거래가 하나의 즐거운 경험으로 연출되는 셈입니다. 이런 화면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느끼는 편안함과, 서비스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에서 기대하는 격식은 서로 다른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십시오체를 보기 어려워진 요즘 화면들
요즘 모바일 앱을 사용하다 보면 대부분의 문구가 “~해요”로 끝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아직 등록된 카드가 없어요”, “본인 인증을 완료했어요”, “문제가 발생했어요. 다시 시도해 주세요” 같은 문장은 어느 앱 어느 화면에 놓아도 크게 어색하지 않습니다. 상품을 둘러보는 화면에서도, 대출 계약을 확정하는 화면에서도, 개인정보 삭제 결과를 통지하는 화면에서도 비슷한 말투를 만납니다. 저는 이런 화면을 볼 때 가끔 묘한 위화감(?)을 느낍니다. 사용자가 하는 일의 성격과 중요도는 서로 다른데, 서비스가 건네는 말의 무게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바일 앱 전체에서 해요체가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지 보여 주는 통계 자료를 확보한 것은 아니라서, 이 글은 단지 여러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가지게 된 지극히 개인적인 의문에서 출발합니다.
UX 라이팅은 사용자가 서비스를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화면의 언어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쉽고 간결한 문장, 사용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말투가 중요하게 다뤄져 왔습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의 서비스나 공공기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길고 딱딱한 문장들은 대중으로 하여금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거리감도 상당히 느껴졌고요. 어려운 한자어와 복잡한 표현을 덜어 내고,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으로 바뀐 것은 분명 좋은 변화입니다. 다만 저는 그 과정에서 친근한 말투가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요즘에는 대부분의 모바일 앱 서비스에서 거의 당연하게 적용되는 기본값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그게 좀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한국어에는 말투를 고르지 않을 자유가 없다
한국어는 문장을 끝맺는 순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가 드러나는 언어입니다. 학교 문법에서는 이를 상대 높임법이라고 부르며, 듣는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종결어미를 여섯 단계로 나눕니다. 격식체에 속하는 하십시오체, 하오체, 하게체, 해라체와 비격식체에 속하는 해요체, 해체가 그것입니다. 이 글에서 주로 비교하게 되는 것은 격식체의 하십시오체와 비격식체의 해요체가 될 것 같습니다. 하십시오체는 아주높임, 해요체는 두루높임으로 설명되지만, 두 말투의 차이는 상대방과 어느 정도의 격식을 유지하느냐에서도 드러납니다.
영어의 “Your transfer is complete.”는 누구에게 말하든 같은 문장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한국어로 옮기려면 “송금이 완료되었습니다”, “송금이 완료됐어요”, “송금이 완료됐어”처럼 종결어미를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송금 완료”처럼 명사형으로 문장을 끝맺는 방법도 있지만, 완결된 문장으로 사용자에게 말을 건네려면 어떤 높임 표현을 사용할지 정해야 합니다. 영어에서도 어휘나 문장 구조를 통해 격식과 사회적 관계를 드러낼 수 있으므로, 영어에는 이런 문제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국어에서는 상대 높임이 종결어미에 문법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해요체를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부드럽게 다듬는 일이 아니라, 사용자와 어느 정도까지 거리를 두고 이야기할지를 선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 구분 | 하십시오체 | 하오체 | 하게체 | 해라체 | 해요체 | 해체(반말) |
|---|---|---|---|---|---|---|
| 문체 | 격식체 | 격식체 | 격식체 | 격식체 | 비격식체 | 비격식체 |
| 높임 등급 | 아주높임 | 예사높임 | 예사낮춤 | 아주낮춤 | 두루높임 | 두루낮춤 |
| 주로 쓰이는 자리 | 공식 발표, 뉴스, 고객 응대, 공문 | 일상 대화에서는 드물고, 안내문의 “~하시오”에서 볼 수 있음 | 손아래사람이나 허물없는 사이에서 쓰임 | 손아래사람에게 하는 말, 일기와 기사 같은 글말 | 일상 대화, 부드럽게 높이는 말 | 친밀한 사이에서 쓰임 |
| 송금 결과 | 송금이 완료되었습니다 | 송금이 완료되었소 | 송금이 완료되었네 | 송금이 완료되었다 | 송금이 완료됐어요 | 송금이 완료됐어 |
| 개인정보 처리 |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소 | 개인정보가 삭제되었네 | 개인정보가 삭제되었다 | 개인정보가 삭제됐어요 | 개인정보가 삭제됐어 |
| 일반적인 인상 | 공식성, 격식 | 예스러움, 손윗사람의 말투 | 손윗사람의 다정한 예스러움 | 단정적임, 낮춤 | 친근함, 부드러움 | 친밀함, 격의 없음 |
(위 표의 마지막 행은 문법적으로 정해진 의미가 아니라 각각의 말투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인상을 정리한 것입니다. )
화면마다 무게가 다르다
예를 들어 “회원님의 개인정보가 삭제됐어요”와 “회원님의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는 같은 사실을 전달하지만, 후자는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주체가 처리 결과를 공식적으로 통지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물론 종결어미만으로 실제 처리의 정확성이나 법적 효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서비스가 어떤 성격의 행위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어떤 태도로 전달하는지는 문체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는 친근함보다 공식성을 조금 더 앞세우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는 개인의 일상적인 소비 활동을 돕는 서비스와 조금 다른 성격을 갖습니다. 사용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더라도, 실제로는 사업체를 대표해 계약을 체결하거나 거래 상대방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화면에서 서비스가 사용하는 문장은 단순히 사용자 한 사람에게 건네는 안내를 넘어, 사업자 간의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언어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차이가 문체를 선택할 때도 고려되었으면 합니다. 사용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만큼, 그 사용자가 어떤 역할과 입장에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상품을 둘러보거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받고, 알림 설정을 변경하는 화면에서는 해요체의 부드러움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이러한 화면에서 사용자는 법적 효력이 있는 결정을 내리거나 중요한 거래의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가벼운 탐색과 선택을 이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품을 탐색하다가 실제 결제를 확정하는 단계로 넘어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서비스는 더 이상 상품을 추천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사용자의 결제 의사를 확인하고 거래 결과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사용자가 하는 행위의 성격이 달라졌다면 서비스의 말투도 그에 맞게 달라지는 편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화면이 바뀔 때마다 무조건 종결어미를 바꿔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서로 다른 상황에 언제나 같은 말투를 적용하는 것이 정말로 좋은 사용자 경험을 위한 설계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어로 UX 라이팅을 한다는 것
UX 라이팅에서는 일관성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같은 기능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거나,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표현을 사용하면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문체 역시 일정한 규칙이 필요하지만, 저는 일관성이 반드시 모든 문장을 같은 종결어미로 끝맺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사람과 대화할 때도 우리는 상황과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라 말투를 조절합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일관되게 유지해야 할 것은 해요체나 하십시오체 자체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그 사람의 선택과 권리를 존중하려는 태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태도를 유지하면서 상황에 따라 문체를 달리한다면 저는 그 편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한국어의 높임법은 단순히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한 문법이 아니라, 상황과 관계에 따라 말하는 방식을 조절할 수 있게 해 주는 언어적 자원이기도 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UX 라이팅을 설계할 때 이 점을 좀 더 중요하게 다뤘으면 좋겠습니다. 사용자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서비스가 어떤 입장에서 말을 건네는지, 그 문장이 어느 정도의 격식을 필요로 하는지까지 고려한다면 문체를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질 것입니다. 친근한 표현이 사용자에게 좋은 경험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해요체를 마치 디폴트처럼 사용하는 것은 한국어가 가진 표현의 차이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드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쉽고 간결하게 쓰는 것과 적절한 높임법을 선택하는 것은 서로 배타적인 목표가 아니기에,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모든 사용자가 서비스와 친근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융 서비스가 친구처럼 말하는 것을 편안하게 느끼겠지만, 다른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는 기관이 조금 더 격식 있게 말하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처음의 송금 화면으로 돌아가 보면, 저는 여전히 “송금했어요!”보다 “송금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문장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한국어에는 상대방과의 관계와 상황에 따라 말투를 달리할 수 있는 여러 표현이 있고, 그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같은 문장도 다른 인상과 경험을 남깁니다. UX 라이팅이 사용자의 경험을 세심하게 설계하는 일이라면, 그 경험을 전달하는 언어 자체의 특성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높임법이 발달한 한국어로 서비스를 만든다면, 그 언어가 가진 다양한 표현과 미묘한 차이를 지금보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봤으면 합니다.
참고 자료
- Microsoft, Microsoft Writing Style Guide, 「Top 10 tips for Microsoft style and voice」. https://learn.microsoft.com/en-us/style-guide/top-10-tips-style-voice
- Mailchimp, Content Style Guide, 「Voice and Tone」. https://styleguide.mailchimp.com/voice-and-tone/
댓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 보세요.